[판례] 6·25 전쟁이 일어난 후 북한군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북한군과 그 부역자들이 패퇴하는 과정에서 학살당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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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 6·25 전쟁이 일어난 후 북한군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북한군과 그 부역자들이 패퇴하는 과정에서 학살당한 사람

0 903 2010.06.2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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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요건비대상결정처분취소
[전주지법 2009구합291, 선고, 2009.11.10, 판결 : 확정]

【판시사항】
[1] 국가비상사태에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13호 (가)목에 정한 ‘공무원 순직’의 인정 범위
[2]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에서 검사로 근무하다가 6·25 전쟁이 일어난 후 북한군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북한군과 그 부역자들이 패퇴하는 과정에서 학살당한 사람에 대하여,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13호 (가)목에 정한 ‘공무로 인하여’ 사망한 자로서 순직공무원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국가의 법질서가 제대로 작동하는 평상시라면 공무원으로서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로서 국가를 위한 희생이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전쟁 또는 사변으로 인하여 국토의 일부가 적국이나 반국가단체의 수중에 넘어간 비상사태가 발발한 경우라면, 공무원이 제 살 길을 도모하지 않고 국가를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즈음 적국이나 반국가단체에 붙잡힌 상황에서도 협조를 거부함으로써 공무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은 국가를 위한 희생이라 아니 할 수 없으므로,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 살해된 경우도 ‘공무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로 보아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어야 한다.
[2]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에서 검사로 근무하다가 6·25 전쟁이 일어난 후 북한군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북한군과 그 부역자들이 패퇴하는 과정에서 학살당한 사람에 대하여,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검사로서 상부의 지시에 따라 중요한 문건을 가지고 부산으로 가기 위하여 군산지청 사무실에 들렀다가 북한군의 추격을 받고 피신하였다가 붙잡혔고 그 상황에서도 침묵함으로써 협조를 거부하여 모진 고문을 받고 살해된 점 등에 비추어,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13호 (가)목에 정한 ‘공무로 인하여’ 사망한 자로서 순직공무원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13호 (가)목 / [2]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13호 (가)목

【전문】
【원 고】
【피 고】
익산보훈지청장

【변론종결】
2009. 9. 22.

【주 문】
 
1.  피고가 2008. 11. 28. 원고에게 한 소외 망인에 대한 국가유공자요건 비대상결정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의 아버지인 소외 망인(1913. 5. 16.생, 이하 ‘망인’이라 한다)은 00지방검찰청 00지청(이하 ‘00지청’이라 한다)에서 검사로 근무하다가 6·25 전쟁이 일어난 후 북한군과 그 부역자들에게 붙잡혀 1950. 9. 26. 학살당했다.
 
나.  원고는 2008. 9. 22. 피고에게 망인에 대한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하였으나, 피고는 2008. 11. 28. 망인의 사망과 공무수행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망인을 국가유공자에 해당하지 아니한 자로 결정하는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인정 근거 : 다툼 없는 사실, 갑 1호증, 갑 2호증의 1, 2, 을 2호증, 을 6호증, 을 7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인정 사실
(1) 6·25 전쟁 초기인 1950. 7. 중순경 북한군은 00시를 점령하였고, 1950. 9.경에는 부산 주변을 제외한 거의 전 국토를 점령하였다.
(2) 한편, 망인은 1949. 2. 23. 00지청 검사보로 임용되어, 1950년 6·25 전쟁 발발 당시에는 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3) 망인은 1950. 7. 중순경 북한군의 군산시 점령이 임박한 상황에서 상부의 지시로 00지청의 중요 문서를 가지고 부산으로 가기 위하여 00지청에 갔다가 북한군의 추격을 받고 피신하였다.
(4) 망인은 그 무렵 고향인 00군에서 북한군에 붙잡혀 00인민경찰서 유치장에 감금되었는데, 검사라는 이유로 소위 정치보위부에서 직접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조사에 응하지 아니하고 침묵하였으므로 옷이 피범벅이 되어 찢어지고 전신에 피멍이 들 정도로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5) 유엔군은 1950. 9. 15.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1950. 9. 28. 서울을 수복하였다. 북한군과 그 부역자들은 패퇴하는 과정에서 1950. 9. 26. 000 소재 망산에서 망인을 학살했다.
[인정 근거 : 다툼 없는 사실, 갑 2호증의 1, 갑 3호증의 1 내지 4, 갑 4호증, 갑 5호증, 갑 6호증의 1, 2, 갑 7호증, 갑 8호증, 갑 9호증의 1 내지 4, 갑 10호증, 갑 11호증의 1, 2, 갑 12호증의 각 기재, 증인 소외 1, 2의 각 증언, 이 법원의 국가기록원장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나.  관계 법률
별지 기재와 같다.
 
다.  판 단
(1) 국가유공자 예우의 기본이념
예로부터 국가의 건국, 존속 및 발전을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국가유공자들의 뜻을 기리고 그 유족을 잘 보살핀 국가는 날로 발전했고, 그렇지 못했던 국가는 쇠망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현세를 사는 국민들과 그 후손들이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들에게 합당한 예우가 행해지는 것을 보고 배운다면 국가에 대한 믿음과 애국심이 절로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는 곧 국가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 헌법도 제32조 제6항에서 “국가유공자·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의 유가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우선적으로 근로의 기회를 부여받는다.”고 규정하여 국가유공자 예우의 문제를 특별히 규정함으로써 국가유공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회는 1984. 8. 2. 종전의 원호대상 관련 법률들을 통합하여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유공자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였다. 국가유공자법이 추구하고 있는 예우의 기본이념은, 대한민국의 오늘은 온 국민의 애국정신을 바탕으로 전몰군경과 전상군경을 비롯한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 위에 이룩된 것이므로 이러한 희생과 공헌이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에게 숭고한 애국정신의 귀감으로서 항구적으로 존중되고, 그 희생과 공헌의 정도에 상응하여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의 영예로운 생활이 유지·보장되도록 하는 데 있다( 국가유공자법 제2조).
(2) 국가 비상사태와 국가유공자의 범위
국가유공자법 제4조 제1항은 국가유공자법의 적용 대상 국가유공자에 관하여,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상의 순국선열·애국지사( 제1, 2호), 전몰군경( 제3호) 등으로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같은 항 제13호 (가)목은 순직공무원에 관하여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상 공무원으로서 ‘공무로 인하여’ 사망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특히 국가 비상사태와 관련하여 공무원 순직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문제될 수 있다.
살피건대, 국가의 법질서가 제대로 작동하는 평상시라면 공무원으로서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로서 국가를 위한 희생이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전쟁 또는 사변으로 인하여 국토의 일부가 적국이나 반국가단체의 수중에 넘어간 비상사태가 발발한 경우라면, 공무원이 제 살 길을 도모하지 아니하고 국가를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즈음 적국이나 반국가단체에 붙잡힌 상황에서도 협조를 거부함으로써 공무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은 국가를 위한 희생이라 아니할 수 없으므로,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 살해된 경우도 ‘공무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로 보아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3) 망인의 순직 여부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위 인정 사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6·25 전쟁 초기인 1950. 7.경부터 1950. 9.경까지 사이에 북한군이 부산 주변을 제외한 거의 전 국토를 점령하였으나 대한민국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었고 망인은 대한민국 검사였던 점, 망인은 검사로서 상부의 지시에 따라 중요한 문건을 가지고 부산으로 가기 위하여 군산지청 사무실에 들렀다가 북한군의 추격을 받고 피신하였다가 붙잡힌 점, 망인은 북한군과 그 부역자들에게 붙잡힌 상황에서도 침묵함으로써 협조를 거부하여 모진 고문을 받았고 살해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망인은 국가유공자법 제4조 제1항 제13호 (가)목 소정의 ‘공무로 인하여’ 사망한 자로서 순직공무원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4) 따라서 망인을 국가유공자에 해당하지 아니한 자로 결정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할 것이다.
 
3.  결 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 지] 관계 법률 : 생략]

판사 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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