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적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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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의 노병의 독백

전적지 순례

0 1,817 2004.03.14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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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땅굴 견학

  오늘(2003. 6. 25)은 군대 동기생(갑종간부 제57기)들이 부부 동반으로 제2땅굴 견학을 하는 “안보 관광의 날”이다. 행사에 참가하려고 광주와 전주,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아침 일찍 지하철 제1호선 창동역 앞에 모였다.
  서로가 만나면 반가운 인사와 함께 군대시절, 힘들고 고생했던 이야기가 오간다.
  나이가 70 고개를 넘어 80 고지를 향해서 달리면서도 만나면 옛날 군대 시절로 돌아간다.
  일행 45명이 탄 버스가 ‘아스팔트’ 포장도로 위를 제2땅굴 견학을 위해서 달린다.
  북한강을 끼고 꾸불꾸불 돌이기는 길가 산비탈엔 하얀 아카시아 꽃이 주렁주렁 늘어지고, 산 밑 감자밭에 하얀 감자 꽃이 흐느적거린다.
  38선을 넘으니 포장도로 양쪽엔 야산이 이어지며, 산에는 소나무에  새 순이 길게 하늘로 향하고, 잔솔밭 소나무 숲은 어머니의 젖가슴 같이 포근해 보인다.

   상호는 차창(車窓) 밖에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옛날을 회상한다. “지금 달리고 있는 이 길이 ‘캬라멜’ 도로야, 저기 보이는 저 산은 ‘크리스마스’ 고지이고, 저 산속에 하얗게 솟아있는 동상은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 노도같이 밀려오는 인민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김풍익 중령의 동상이지” 하고 심영수 대령(예비역)이 신나게 설명한다.

  국망봉 산자락은 병풍을 두른 듯 보기가 좋으며, 꼬불꼬불 산길 을 달리던 버스는 수풀이 우거진 ‘각흘’ 계곡에서 버스를 세운다. 이곳이 6.25사변 당시 최초로 인민군과 싸웠던 격전지요,  이 계곡이 6.25사변 당시 최초로 인민군과 싸웠던 격전지요, 저 고개 넘어 서울 쪽으로 가늘게 뻗어있는 이 길은, 평강과 철원, 동두천과 의정부를 거쳐 서울로 접근하는 접근로라고 심영수 씨는 설명한다.
  “여기가 우리 중대의 60mm 박격포 진지였고, 저 능선에서 인 민군과 싸우다가, 꾸룽...,꾸룽 하고 지축을 흔들며 적의 탱크가 저 언덕을 넘어와서 우리는 후방으로 진지를 옮겼고. 대대장이던 김풍익 소령은 수류탄을 들고 적 탱크의 뚜껑을 열고 수류탄을 넣으며 장열 한 전사를 했지” 하고 심영수 씨는 설명을 계속한다.

  여기가 우리 중대의 60mm 진지였고, 저 능선에서 인민군과 싸 우다가, "꾸룽...,꾸룽"하고 집채 같은 적 탱크가 지축을 흔들며 저 언덕을 넘어와서 우리는 진지를 옮겼고. 대대장이던 김풍익소령 은 수류탄을 들고 인민군 탱크의 뚜껑을 열어 수류탄을 넣으며 장렬한 전사를 했지.  
  
  “다부동”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심영수 대령(예비역)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인민군이 남침하자 적과 싸우며 대구  다부동 방어선까지 밀리다가 “맥아더” 원수의 인천 상륙으로 북진 대열에 참가할 수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인 데,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의 현재를 잊고, 젊은 시절 인민군과 싸우던 옛날로 돌아간다.  

  흐르는 골짜기물이 맑아서 손도 담가보고,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니, 산천의 아름다움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떠오르며, 금방이라도 노루와 사슴이 물 마시러 내려올 것만 같다.

  문득 6.25사변 때, 화천 ‘구만리’ 전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김유풍 소위(예비역) 생각이 난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화천 발전소를 확보하려고 ‘구만리’ 고개에서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는데, 지게부대(노무자)가 고지(高地)까지 운반한 주먹밥을 먹어야 하는데 중공군과 싸우느라 먹을 시간이 없어서, 전투가 끝나고 주먹밥을 먹으려고 작업복 아래 주머니에 넣었던 주먹밥은 화랑담배 가루와 섞여 뒤범벅이 된 채 꽁꽁 얼었지만, 그것마저 양이 모자라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갈증이 심할 때는 물 대신 눈을 한줌 먹기도 하고, 눈마저 없을 때는 쓰고 있던 철모를 벗어 오줌을 받아 마신 적도 있었다고 한다.
  중공군과 접촉하여 전투를 하는데, ‘구만리’ 고개 아래 화천강에서 떠내려오는 피아의 시체들이, 뗏목에서 풀려난 통나무같이, 벌겋게 물 들은 강물을 빽빽이 메우며 떠내려 오더라고 한다.
  
  옆에서 전우가 쓰러지면 이성을 잃고 적개심만 남아 “돌격 앞으로” 하고 적을 향하여 돌진하는 데, 앞에 있는 수풀만 의식할 뿐 총알이나 포탄도 두렵지 않았다고 한다.

  고 “이승만” 대통령은 열세한 우리 국군이 중공군 1개 군단을 섬멸하고 화천 발전소를 확보했다고 해서, 댐이 있는 호수 이름을 파로호(破虜湖)라고 명명(命名)했다고 한다.
  
  청춘을 나라에 바친 젊은이들이 있었기에 나라의 전통이 이어지고, 평화로운 가운데 우리는 관광을 즐기며 질 좋은 삶을 살고 있다.
  산새(山鳥)의 지저귐과 산천의 아름다움, 맑은 공기는 우리 삶의 활력소를 재충전해준다.

  제2땅굴로 가는 길목에 고석정이 있는데, 흐르는 시냇가 암석 위에 세워진 정자는 신라 진평왕과 충숙왕이 놀던 정자이며 한탄강 중류에 있다.

  조선조 명종 때 문무를 겸비한 ‘임꺽정’이 천민 출신이라고 등 과(登科)의 길이 막히자, 석성(石城)을 쌓고 함경도에서 상납 하 는 진상품(進上品)을 탈취 하여 가난한 백성과 농민에게 나누어 주던 활동의 근거지라고 한다.
  한탄강을 지나 비무장 지대로 들어서니,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 제2땅굴 입구가 있는데, 남쪽 2Km 지점에 남방한계선이 있으니, 남방한계선을 2Km나 넘은 곳에 제2땅굴이 있다.

  저녁에 보초 서던 경계병이 발밑에서 느껴지는 땅울림과 희미한 폭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던 중, 1975년 가을 아침 안개 같은 김이 솟아올라 시추를 한 것이 땅굴을 발견한 실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상호 일행 외에도 서울에서 온 듯 한 고등학생들이 안보 교육을 겸해서 제2땅굴 견학을 왔는데, 땅굴은 왕복 길이가 1,2Km에 달하 는 “지하터널”이다.
  터널은 천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바닥엔 고무판을 깔아 미끄 럼을 방지하고, 통로를 따라 ‘푸라스틱’ 산소통이 있으며, 1950년대 를 연상시키는 전구가 희미하게 깜박인다.
  땅굴은 바위를 뚫어 통로를 냈으며, 천정이 얕아 땅굴 관람자의 머리가 바윗돌에 부딪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땅굴 입구에서 나누 어주는 ‘화이바’ 모자를 썼는데도, 상호는 천정 바위에 머리를 부 딪치고 주저앉아 옷을 버렸다.

  동족끼리 싸우는 6.25사변이 발발하고 50여 년이 지났어도, 우리 민족은 아직도 희생을 강요당하고 많은 사람이 고통을 참으며 살고 있는 데, 북쪽에선 또다시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땅 속으로 휴전선 너머까지 굴을 파서 불의의 습격을 하려고 한다.

  북한에서 땅굴 작업을 했다는 귀순자는 땅굴 11개를 팠다는데, 오늘까지 네 개만 발견됐다. 땅굴 견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철원읍을 경유하게 된다.
  철원읍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잡초만 무성하고, 무성한 잡초 속에 묻혀있는 노동당 건물은 잔해만 남아있다. 옛날에 그 안에서 공산당이 자행한 만행을 생각하니 지옥의 현장을 보는 느낌이다.

  길 오른쪽은 지뢰지대인 데, 군데군데 붉은 색으로 된 세모꼴의 지뢰지대 표시가 철조망에 달려있고, 민통선 안은 살벌한 전쟁 분  위기가 감돌고 있으며 개발을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

  검문소를 지나 전망대로 올라가 비치된 망원경으로 북쪽을 바라보니, 인민군 진지와 총구멍, 산허리에 보이는 대남 선전구호만 없으면, 낮게 깔린 실구름과 함께 파도처럼 이어지는 산봉우리가 한 폭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철의 3각지는 철원과 김화, 평강이라고 하며, 전략 상 중요한 고지 라 6.25 전쟁 시에는 서로가 뺏고 뺏기는 전투를 되풀이 하였으며,  아군 측엔 산세가 불리해서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고 한다.

  호국 영령이 흘린 피의 대가를,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열매를 따 먹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한 삶 뒤에는 국 토수호를 위해서 목숨 바친 영령들과 전상(戰傷)의 고통 속에 삶을 이어가는 국가유공상이자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귀로에 남자들은 먼저 간 전우와 인민군과 싸우던 당시를 생각하며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슬품에 잠기고, 여자들은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무거운 가슴 으로 상념(想念)에 빠져 있는데, 조치헌 중령(예비역) 부인이 “여러 분 옛날만 생각지 말고 분위기를 바꿔서 기분을 전환 합시다” 하고 차내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며 노래자랑이 시작된다.

  이근유 회장이 “박달재”를 부르고, 문화방송 전주사장을 지낸 김 순환 소령(예비역)이 현인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신라의 달밤”을 구성지게 부른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논에는 푸른 벼가 자라고, 네모진  논은 커다란 바둑판을 연상케 한다.
  ‘운악산’ 휴게소에서 시원한 바람을 마시고, 수양대군의 묘소가 있는 광릉 숲을 지날 때는 “멍석 카페”라는 술집 간판이 스쳐지나간다.

  멀리 보이는 산허리엔 저녁연기가 자욱하게 띠를 두르고, 구름 과 산 사이엔 석양 노을이 곱다. 초가집에서 가늘게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를 보며, 다시는 동족끼리 싸우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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