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비판했으니 나가라?...보훈부판 ‘블랙리스트’ 논란
입력 : 2024.04.06 11:00 수정 : 2024.04.06 13:44김찬호 기자
[주간경향] 국가보훈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인식을 비판한 전문가를 별다른 설명도 없이 관련 사업에서 제외했다. 국외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다니며 현장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김동우 작가가 그 대상이다. 김 작가는 지난 3월 1일 공개된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에게 우리 공군의 모태가 된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 비행장 터 보존을 부탁하자 ‘너무 비싸면 못 산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후 2022~2023년 두 해 연속 강사로 참여했던 ‘국외 보훈사적지 탐방’에서 배제됐다.
김 작가 배제는 보훈부의 결정 사항으로 알려졌다. 국외 보훈사적지 탐방은 경쟁입찰을 통한 외주 방식으로 진행한다. 보훈부 관계자는 최종 탐방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측이 김 작가 참여를 추천하자 “언론에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질타한 부분 때문에 난처하다. 빼고 가야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정부 기관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기업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대통령을 비판한 전문가를 콕 찝어 정부 관련 업무에서 배제한 것은 ‘블랙리스트’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훈부는 해당 사안에 대한 질의에 지난 4월 4일 “지역과 연계된 인물들을 스토리텔러(강사)로 선정해 탐방 프로그램 현장성을 살린 결과”라고 답했다.
대통령 심기 경호하는 정부기관?
보훈부는 만 19세 이상~34세 이하 대한민국 청년을 대상으로 국외에 있는 보훈사적지 탐방 사업을 하고 있다. 선국선열의 희생과 공헌이 서려 있는 장소를 돌아보고 보훈의식을 함양한다는 것이 보훈부가 밝힌 목적이다. 1인당 100만원 정도의 참가비를 받고 나머지 비용 대부분은 세금으로 충당한다. 참가자들은 탐방기간 보훈사적지를 알리는 영상(쇼츠) 제작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를 돕기 위해 전문가도 함께한다. 김 작가는 2년 동안 총 4차례 전문가로 해당 사업 등에 참여했다. 2022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2023년에는 중국 동북 3성 탐방 등에 동행했다. 올해 탐방지 하와이 역시 김 작가가 동행 할 것이 유력해 보였다. 최종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와 탐방 세부계획을 세운 것이 김 작가였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와 관련해 전문성이 있었다. 2017년부터 인도, 일본, 멕시코, 쿠바, 미국, 중국 등 10여개국을 돌며 국외에 있는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다녔다. 한 줄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사적지를 재발견했고,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곳을 사진, 글로 기록했다. 그 결과가 <뭉우리돌의 바다>, <뭉우리돌의 들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책이다. 그의 노력이 알려지며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기도 했다. 정부 역시 김 작가의 전문성, 노력 등을 인정해 각종 상을 수여했다. 2022년에는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특히 2020년에는 보훈부의 전신인 국가보훈처가 보훈문화상을 수여했다.
하와이 역시 예외가 아니다. 김 작가는 하와이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를 촬영한 사진으로 2022년 별도의 전시회를 열었다. 올해 보훈사적지 탐방 사업에 지원한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김 작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 역시 김 작가의 도움을 받았다. 탐방 사업 경쟁에 참여한 한 업체 관계자는 “이번 하와이 탐방 사업에 총 5개 기업이 참여했고, 이중 4개 기업이 김 작가와 함께 하와이로 가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참가자들의 평가도 좋았다. 국외 보훈사적지 탐방에 참여한 A씨는 지난 4월 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동우 작가는 국외 보훈사적지 탐방에 앞서 참가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며 “강사 중에서도 가장 친화력이 좋아 저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도 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성 측면에서도 현지에서 직접 취재한 독립운동사를 이야기해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보훈부판 블랙리스트인가?
업체의 요청, 참가자들의 호평이 있었음에도 김 작가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업에서 배제됐다. 참가자 모집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3월 26일에야 김 작가는 자신이 빠져야 한다는 사실을 업체 관계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보훈부가 추진한 탐방에 강사로 여러 차례 참여했지만, 보훈부는 김 작가에게 별다른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질의에 보훈부는 서면으로 답변했다. 김 작가가 배제된 이유를 묻는 말에 “하와이 보훈사적지 탐방의 경우, 해당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현지 전문가(2인)와 국내 역사학 전공 전문가(1인)를 선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현지 전문가가 누구인지도 밝혔다. 문제는 사업을 기획하며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현지 전문가를 섭외하자고 제안한 사람도 김 작가였다는 점이다. 보훈부가 현지 전문가라고 밝힌 사람 역시 김 작가가 업체 측에 추천한 인물이었다. 애초에 하와이 탐방사업은 김 작가를 배제하면 설명이 어려운 사업이었다.
김 작가 배제를 통보하며 ‘대통령 비판 사안을 언급했느냐’는 질문에는 “담당자가 질의에 언급된 내용과 같이 설명한 바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김 작가는 업계 관계자로부터 자신의 배제 사유를 들었다. 이 관계자는 김 작가에게 “경향신문을 포함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을 비판했기 때문에 데려가기 어렵다고 하더라. 문제 인터뷰가 총 두 건이라고 하던데. 마지막 회의를 하면서 한 번 더 그걸 강조했다”고 답했다.
올해 6월 30일 출발하는 하와이 탐방은 총 110명의 참가자를 모집한다. 관광이 아닌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이 목표임에도 이들에게 하와이 사적지를 설명할 전문 강사는 1명이 배정됐다. 취재가 시작된 후 보훈부는 현지 전문가 2명을 이미 섭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보 포스터에는 해당 내용이 나와 있지 않다. 김 작가를 배제할 만큼 현지 전문가가 독립운동 관련 지식을 갖추고 있는지, 110명의 참가자에게 제대로 정보 전달을 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김 작가는 열정적으로 준비했던 계획이 취소됐다. 대통령에게 국외 독립운동사적지를 보존해 달라고 부탁 한 번 한 것치곤 그 대가가 너무나 컸다. 사실상 ‘블랙리스트’에 오른 만큼 당분간 보훈부와의 협업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김 작가는 “대통령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정부 관련 일은 할 수 없는 시대로 회귀한 것 같아 씁쓸하다”며 “무엇보다 보훈부가 대통령 심기 경호에 나서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금이 어느시대인데
해외 보훈사적지를 그리 오래동안 연구한 소중한분을 말도 안되는 괘씸죄로 엮어서 저리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