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김화영]유공자 예우는 일상에서부터
김화영 부울경취재본부 기자
입력 2022-01-20 03:00업데이트 2022-01-20 03:00
김화영·부울경취재본부
김화영 부울경취재본부 기자“저희 잘못입니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이달 초 버스회사에 유공자 무임승차 자료를 배포했고 기사 교육도 하겠습니다.”
부산버스운송사업조합 박달혁 기획실장은 19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박 실장이 이렇게 사과한 사건이 벌어진 건 지난해 12월 15일. 베트남전쟁 참전 후 상이군인 6급 판정을 받은 곽모 씨(73)는 시내버스를 무임승차하려다 난처한 상황(본보 지난해 12월 30일자 A16면 참조)에 맞닥뜨렸다.
곽 씨는 이날 재발급 받은 국가유공자교통카드를 버스 단말기에 댔으나 결제가 되지 않았고 버스기사는 곽 씨를 ‘사기꾼’으로 몰아세웠다. ‘무임 6급’이라고 적힌 카드를 보여줬으나 기사는 다른 승객 앞에서 막무가내로 무안을 줬다. 곽 씨는 차고지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다른 기사 역시 곽 씨 편을 들지 않았다.
‘버스요금 1300원 때문에 사기꾼 취급받는 국가유공자’란 제목으로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본보 기사에 458개의 댓글이 달렸다. “당해보면 기가 차요. 거지 취급하고 욕설하고…”라며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푸념이 쏟아졌다. “카드가 발급되면 바로 쓸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 “무임승차 용어를 복지승차로 순화하자” 등 보훈 행정의 개선을 촉구하는 의견도 잇따랐다.
보훈당국이 이번 기회에 유공자 예우 행정에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지 짚어보는 것은 어떨까. 유공자 무임승차 지원에만 연간 84억 원의 국비가 투입된다. 국가보훈처가 전국버스연합회에 보조금을 지급해 상이군인 등이 시내버스를 무료로 이용토록 지원하는 것.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지만 정작 당사자가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버스회사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다.
부산 시내버스 2500여 대는 시민 세금이 투입되는 준공영제로 운영된다. 부산시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유공자에게 발급된 1만2153개의 교통카드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세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현행 유공자 교통카드 시스템에도 빈틈이 많다. 부산과 서울 등 특별·광역시 버스 단말기엔 무임카드 인식 시스템이 갖춰졌지만 군 단위의 소규모 도시엔 시스템이 없는 탓에 국가유공자증 등을 기사에게 보여줘야 한다. 부산에서 쓰는 카드가 다른 도시에선 호환이 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해당 도시 교통카드 결제 제휴사가 ‘티머니’라면 ‘캐시비’인 도시의 카드가 인식되지 않는 식이다. 보훈처가 “전국 어디서든 카드 하나로 결제 가능한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밝힌 건 그나마 다행이다.
무엇보다 유공자를 향한 우리 모두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유공자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면 “고맙습니다”라는 안내 음성이 나온다. 하지만 이를 불편하게 느끼는 유공자가 많다고 한다. 유공자를 배려하기 위해 설계된 음성이지만 유공자는 “공짜로 타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되레 부담을 느낀다는 것.
그렇다면 유공자가 탑승할 때 “국가에 헌신한 분의 탑승을 환영합니다”라고 안내해보는 것은 어떨까. 눈치 보지 않고 예우 받는다고 느껴질 수 있도록 말이다. 국가에 헌신했던 이가 존중받는 사회 분위기는 버스처럼 늘 마주하는 일상에서부터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