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훈부 지원 단체가 학생들에게 ‘뉴라이트 역사관’ 주입
이승만 미화 도서 읽게 하고 ‘극우 스피치 대회’
리박스쿨 ‘협력단체’…윤 정부서 보조금 세 배 증가
나경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 ‘축전 영상’ 보내 응원
위준영기자
수정 2025-06-30 07:26등록 2025-06-30 06:00
국가보훈부의 관리·감독 아래 운영되는 비영리 민간 단체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가 지난 4년간 해마다 초등~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승만을 우상화하고 독재를 미화하는 행사를 열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단체는 학생들에게 ‘뉴라이트 역사관’을 교육해 파문을 일으킨 리박스쿨이 “협력 단체”로 밝힌 단체 중 한 곳이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입니다. 우리나라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생일은 1948년 8월15일입니다.”, “공산주의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 침투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2023년 8월19일 부산에서 열린 ‘제11차 이승만 포럼, 대한민국 인재양성 스피치대회’에서 초등학생들이 발표한 내용이다. 사전 공모를 통해 1차 선별된 참가자들의 본선 행사였는데, 유년·초등·중등·고등·대학장년부 등 총 40여명이 참여했다. 행사는 지정 도서를 읽고 감상평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한겨레가 이 행사 홍보물을 통해 확인한 지정 도서는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야기’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 등 전부 이승만을 미화하는 내용의 책들이었다.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는 행사 공동주최 단체 세 곳 중 하나로 참여해 사업회 명의로 된 최상위 상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장상’을 수여하는 등 행사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이 확인됐다.
한국교육평가원장을 지낸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한겨레에 “이승만은 장기 집권을 꾀하기 위해 부정선거를 획책했고 4·19항쟁으로 하야한 대통령”이라며 “이런 이승만이 집권한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교육하고 그를 국부라고 하는 것은 임시정부 법통을 잇는 우리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고,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고 말했다. 성 교수는 이어 “이런 역사관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교육되고 그 아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 우리 사회는 엄청난 분열과 갈등을 겪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는 리박스쿨 누리집에 “협력 단체”로 소개된 곳 중 하나다. 부정선거론 주장 단체를 이끌고 있는 황교안 전 총리 등이 이 단체의 회장을 지냈는데, 황 전 총리 직전 회장은 신철식씨였다. 신씨는 2021년 4월부터 약 8개월간 이 단체 회장과 ‘우남네트워크’라는 뉴라이트 연합 단체의 상임고문직을 겸했는데, 리박스쿨의 손효숙 대표 또한 이곳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아울러 최근 드러난 리박스쿨의 댓글 조작 조직 ‘자손군’(댓글로 나라를 구하는 자유 손가락 군대) 단장 최아무개씨도 우남네트워크에서 활동했다. 최씨는 지난해 ‘이승만 포럼, 대한민국 인재양성 스피치대회’가 열렸을 때 연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리박스쿨의 손 대표가 ‘동고동락 관계’라고 소개한 대한국민교원조합(대한교조)의 조아무개 상임위원장이 해당 스피치대회의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이 스피치 대회는 2021년 이후 매년 진행됐으며, 2023년에는 최재형 당시 국민의힘 의원이, 2024년에는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축사를 보냈다. 정부의 지원도 이어졌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3년간 국가보훈부가 사업회에 지급한 보조금은 8200만원이었다. 윤 정부 출범 직전 3년간 지급한 보조금이 2400여만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급증한 액수다. 이 단체가 국가보훈부 소관 비영리 민간 단체로 등록된 것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이다.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관계자는 한겨레에 “우리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던 와중에 마침 부산 지역 민간 단체인 자유의 숲에서 먼저 제안한 행사”라며 “우리 사업회 명의의 상을 주고 싶다고 해서 이름만 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신철식 전임 회장은 재임 기간에도 우남네트워크 등 개별 활동을 자주 해 사업회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고,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며 “사업회는 우남네트워크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리박스쿨 손 대표와의 관계 역시 “전에 본 적은 있으나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사이”라고 부인했으며, “협력 단체 기재도 리박스쿨에서 일방적으로 한 것인데 어찌 됐든 이승만을 선양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니 대승적인 차원에서 넘어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해명과 달리 이 스피치 행사에 사업회의 김아무개 부화장과 김아무개 이사가 시상자로도 참여했으며, ‘자유의숲’과 문아무개 사업회 사무총장은 2023년 10월 ‘월간 독립정신 역사정신바로세움 포럼’에도 함께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