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도시 이사 갔더니… “65세 안돼 보훈 명예수당 못드립니다”
지자체별로 재정 여력 따라 수당 액수·나이 제한 달라
“똑같은 국가유공자인데 심리적 박탈감 줄 수 있어”
조선일보 김동현 기자 입력 2021.11.19 04:02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는 박용래(44)씨는 1999년 군 복무 도중 허리를 다쳐 의병 제대했고, 이후 상이등급 7급 판정을 받은 국가유공자다. 허리 통증으로 오래 앉지 못하게 되자 그는 직장 취업을 포기하고 공사 현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지난 7월부터는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져 집에서 쉬고 있다. 국가에서 주는 월 49만6000원의 보훈 보상금이 그의 수입 전부다.
한창 일할 나이에 일하지 못하는 것보다 그가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난해 부천시로 이사오면서 보훈명예수당이 박탈된 것이다. 이사와 함께 주민센터에 수당 신청서를 냈는데, 부천시청으로부터 “65세 이상에게만 지급하는 시(市) 지침상 수당을 줄 수 없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가 이전에 살던 광명시에선 나이 제한 없이 월 3만원씩 보훈명예수당을 지급해왔다. 박씨는 “돈 몇 만 원 못 받은 걸 떠나서, ‘65세가 안 된다’는 이유로 지급하지 않는 걸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경기도 양주시에 거주하는 김모(48)씨도 1994년 군 복무 중 왼쪽 귀의 청력을 잃은 국가유공자지만, 같은 이유로 지자체로부터 보훈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집에서 차로 5분도 안 걸리는 포천시는 나이 제한 없이 10만원씩 수당을 지급하는데,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도 나이와 사는 곳에 따라 수당을 주고 안 준다는 사실에 차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일부 지자체가 ‘65세 이상’이란 자체 기준을 정해놓고 국가유공자들의 보훈명예수당을 주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수당을 지급하는 전국 213곳의 지자체 가운데 경기 부천·성남·수원·양주·용인시를 비롯해 연천군, 강원 춘천시, 전남 영암군 등 최소 10곳이 이 같은 ‘나이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보훈명예수당은 공상군경, 고엽제 후유증 환자, 특수 임무 유공자 등 보훈대상자나 유족들에게 각 지자체가 지급하는 월 10만원 안팎의 수당이다. 정부가 지급하는 보훈 보상금과는 별개로 지자체가 재량을 갖고있다. 국가유공자들 사이에선 “65세 이상이 아니란 이유로 보훈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란 불만이 나온다. 전국 84만여 보훈대상자 가운데 65세 미만은 전체의 23% 수준(19만2999명)이다.
지자체들은 ‘재정 부족’을 이유로 든다. 양주시 관계자는 “6·25와 월남전 참전 유공자들이 대부분 65세 이상이다 보니 그 기준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며 “우리도 지급 대상을 확대하는 걸 검토 중이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쉽지 않다”고 했다. 전남 영암군 관계자도 “국가유공자를 최대한 예우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만, 결국 재정 여건에 맞춰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국가유공자를 사랑하는 모임의 노용환 대표는 “전체의 20% 수준인 65세 미만 국가유공자에게 수당을 주지 못하는 게 경제력 탓이라는 지자체 설명은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중앙 부처가 지급하는 보훈 보상금과 달리, 보훈명예수당은 지급 기준이나 액수가 각 지자체의 재정자립도, 지자체장의 의지 등에 달려 있다”며 “만 65세 이상이라는 보훈 대상자 나이 제한이 국가유공자들에게 차별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며, 각 지자체를 상대로 대상 확대를 권고 중”이라고 했다. 경기도 안산시·파주시, 경북 칠곡군 등도 나이 제한을 뒀다가 보훈 확대 차원에서 해당 규정을 없앴다.
한국보훈포럼 회장인 김태열 영남이공대 교수는 “똑같은 국가유공자인데 나이가 많지 않다고, 또 사는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당 지급 여부가 달라지는 건 생계 유지를 떠나 국가유공자들에게 큰 심리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며 “지자체장 의지만 있다면 예산과 상관없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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