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군인가족-제2땅굴 견학(문정은) * 2004년도 국가보훈처 현상공모 보훈문예물 수필부문 당선작

영원한 군인가족-제2땅굴 견학(문정은) * 2004년도 국가보훈처 현상공모 보훈문예물 수필부문 당선작

박경화의 노병의 독백

영원한 군인가족-제2땅굴 견학(문정은) * 2004년도 국가보훈처 현상공모 보훈문예물 수필부문 당선작

0 9,254 2004.05.23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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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03. 6. 25)은 남편의 군대 동기생(갑종간부 제57기)들이 부부 동반으로 제2땅굴 견학을 하는 “안보 관광의 날”이다. 행사에 참가하려고 광주와 전주,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아침 일찍 지하철 제1호선 창동역 앞 광장에 모인다.
  서로가 만나면 반가운 인사와 함께 군대시절, 힘들고 고생하던 이야기가 오간다.
  나이가 70 고개를 넘어 80 고지를 향해서 달리는 고령인데도, 만나면 옛날 군대 시절로 돌아간다.
  일행 45명이 탄 버스가 ‘아스팔트’ 포장도로 위를 제2땅굴 견학을 위해서 달린다. 북한강을 꾸불꾸불 돌아가니 왼쪽 산비탈엔 하얀 아카시아 꽃이 주렁주렁 늘어고, 산 밑 감자밭엔 하얀 감자 꽃이 흐느적거린다.
  길가 오른쪽에 세워진 38선이란 푯말을 지나니, 도로 양쪽엔 야산이 이어지며, 산에는 잔솔밭에 새 순이 길게 하늘로 향하고, 어린 소나무가 총총히 들어선 모습은 어머니의 젖가슴 같이 포근해 보인다.

   남자들은 차창(車窓) 밖에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옛날을 회상한다.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 안으로 들어서니, 심영수 대령(예비역)이 창밖을 바라보며, “지금 달리고 있는 이 길이 ‘캬라멜’ 도로야, 저기 보이는 저 산은 ‘크리스마스’ 고지이고, 저 산속에 하얗게 솟아있는 동상은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 노도같이 밀려오는 인민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김풍익 중령의 동상이지” 하고 신나게 설명한다.

  국망봉 봉우리는 허리에 병풍을 두른 듯, 푸른 소나무로 가지런히 둘러싸여 보기가 좋으며, 꾸불꾸불 산길을 달리던 버스는 수풀이 우거진 계곡에서 차를 세운다.
  “이곳이 6.25사변 당시 최초로 인민군과 싸웠던 ‘각흘계곡’이 오, 이 길은 고랑포에서 법원리와 송추 계곡을 거쳐 서울로 들어가는 탱크의 접근로이다”라고 심 대령(예비역)은 설명한다.
  “여기가 우리 중대의 60mm 박격포 진지였고, 저 능선에서 인 민군과 싸우다가, 집채 같은 적의 탱크가 “꾸룽...,꾸룽” 하고 지 축을 흔들며 저 언덕을 넘어와서 우리는 진지를 옮기고. 대대장 이던 김풍익 소령은 적 전차에 올라가 탱크의 뚜껑을 열고 수류 탄을 넣으며 장렬한 전사를 했지” 하고 심 대령(혜비역)의 설명은 계속된다.
  
  “다부동”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심 대령(예비역)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인민군의 기습으로 38선 바로 밑에 있던 경기도 웅담읍 감악산 진지에서 적과 만나 싸운 것을 시작으로, 여러 전선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경북 대구까지 밀리고, 낙동강변인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에 방어선을 구축하여 인민군의 남침을 저지하다가, “맥아더” 원수의 인천 상륙으로 길게 뻗은 인민군의 병참선이 중간에서 잘리자 아군은 일제히 반격을 개시하고, 심 대령(예비역)의 소속부대도 낙동강을 건너 북진 대열에 참가할 수 있었다고 해서, 그에게 붙여진 별명인 데,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의 현재를 잊고, 젊은 시절 인민군과 싸우던 옛날로 돌아간다.  
  흐르는 골짜기의 물이 맑아서 손도 담가보고,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니, 산천의 아름다움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떠오르며, 노루와 사슴이 물 마시러 내려올 것만 같다.

  문득 6.25사변 때, 화천 ‘구만리’ 전투에서 왼쪽 다리를 잃은 4촌 오빠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화천 발전소를 확보하려고 ‘구만리’고개에서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는데, 지게부대(노무자)가 고지(高地)까지 운반한 주먹밥을 먹어야 하는 데 중공군과 싸우느라 먹을 시간이 없어서, 작업복 아래 주머니에 넣었다가 전투가 끝나서 먹으려고 꺼내니, 화랑담배 가루와 섞여 뒤범벅이 된 채 꽁꽁 얼었지만, 그것마저 양이 모자라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갈증이 심할 때는 산에서 녹지 않은 눈을 긁어서 물 대신 먹기도 하고, 눈마저 없을 때는 쓰고 있던 철모를 벗어 오줌을 받아 마신 적도 있었다고 한다.

  중공군과 접촉하여 전투를 하는데, ‘구만리’고개 아래 화천강에서 떠내려오는 피아의 군인 시체들이, 뗏목에서 풀려난 통나무 같이, 벌겋게 변한 강물을 빽빽이 메우며 떠내려오더라고 한다.
  옆에서 전우가 쓰러지면 이성을 잃고 적개심만 남아 “돌격 앞으로” 하고 적진을 향해서 돌진하는 데, 앞에 있는 수풀만 의식할 뿐 적의 총알이나 포탄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한다.
  고 “이승만” 대통령은 열세한 우리 국군이 중공군 1개 군단을 섬멸하고 화천 발전소를 확보했다고 해서, 이 댐이 있는 호수 이름을 파로호(破虜湖)라고 명명(命名)했다고 한다.
  산새(山鳥)의 지저귐과 산천의 아름다움, 맑은 공기는 우리 삶 의 활력소를 다시 충전해준다.

  제2땅굴로 가는 길목에 고석정이 있다. 흐르는 계곡 시냇가 암 석 위에 세워진 정자는 신라 진평왕과 충숙왕이 놀던 정자라고 하며 한탄강 중류에 있다.
  조선조 명종 때 문무를 겸비한 ‘임꺽정’이 천민 출신이라고 등 과(登科)의 길이 막히자, 석성(石城)을 쌓고 함경도에서 상납하는 진상품(進上品)을 탈취해서 가난한 백성과 농민에게 나눠주던 활 동의 근거지라고 한다.

  한탄강을 지난 버스가 민통선 안을 계속 달리니, 광활한 벌판에초병(哨兵)이 서 있는 제2땅굴 입구가 나온다. 제2땅굴로부터 휴전선까지는 4Km라고 하며, 휴전선 남쪽 2Km 지점에 남방 한계선이 있으니, 적은 땅 속으로 남방 한계선을 지나, 민통선을 2Km나 침범한 지점까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땅굴을 파내려왔다.

  저녁에 보초 서던 경계병이 발밑에서 느껴지는 땅울림과 희미 한 폭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던 중, 197 5년 가을 아침, 안개 같은 김이 솟아올라 시추를 한 것이 땅굴을 발견한 실마리라고 한다.

  우리 일행 외에도 서울에서 온 듯 한 남자 고등학생들이 안보 교육을 겸해서 제2땅굴 견학을 왔는데, 땅굴은 왕복 길이가 1,2 Km에 달하는 “지하 터널”이라고 한다.

입구에서 ‘화이바’ 모자를 지급받고 안으로 들어가니, 터널은 천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바닥엔 고무판을 깔아 미끄럼을 방지하고, 통로를 따라 은박지에 감긴 직경 20cm 정도의 ‘플라
스틱산소파이프’가 길게 이어지고 있으며, 1950년대를 연상 시 키는 전구가 희미하게 깜박인다.

  땅굴은 바위를 뚫어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으며, 천정이 얕아 땅굴 관람자의 머리가 바윗돌에 부딪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땅굴 입구에서 나눠준 ‘화이바’ 모자를 썼는데도, 남편은 천정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고 주저앉아 옷을 버렸다.

북한에서 땅굴 작업을 했다는 귀순자는 땅굴 11개를 팠다는데, 오늘까지 4개만 발견됐다. 땅굴 입구에서 화이바 모자를 반납 하 고 돌아오는 길은 철원읍을 경유하게 된다.
  철원읍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잡초만 무성하고, 무성한 잡초 속에 묻혀있는 노동당 건물은 잔해만 남아있다. 옛날에 그 안에서 공산당이 자행한 만행을 생각하니 지옥의 형장(刑場)을 보는 느낌 이다.
   버스로 신작로를 달리는 데, 민통선 안쪽이라 길 오른쪽은 지 뢰 지대이고, 군데군데 붉은 색으로 된 길이 15cm 정도의 세모 꼴 지뢰지대 표시판이 철조망에 달려있고, 인가가 없어서 그런지 살벌한 전쟁 분위기가 감돌고 있으며, 개발이 금지되어 넓은 땅이 경작지로 남아 있다.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검문소를 지나 전망대로 올라가서 비 치된 망원경으로 북쪽을 바라보니, 인민군 초소와 총구멍, 산허리  에 보이는 대남 선전구호만 없으면, 낮게 깔린 실구름과 함께 파 도처럼 이어지는 낮은 산봉우리가 한 폭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잔파도처럼 면면히 이어지는 산봉우리 속에 철의 3각지가 있 으며, 철원과 김화, 평강이라고 한다.
  이들 산봉우리는 전략상 중요한 고지라 6.25 전쟁 때는 서로 가 뺏고 뺏기는 전를 되풀이 하였으며, 아군 측엔 산세가 험하 고 노출이 심해서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고 한다.

  호국 영령이 흘린 피의 대가를,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열매를 따 먹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한 삶 뒤에 는 국토 수호를 위해서 목숨 바친 영령들과 전상(戰傷)의 고통 속 에 삶을 이어가는 국가유공상이자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귀로에 남자들은 먼저 간 전우와 인민군과 싸우던 당시를 생각 하는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데, 여자들 도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무거운 상념(想念)에 빠져 있다.

  조치헌 중령(예비역) 부인이 “여러분 옛날만 생각지 말고, 현 실로 돌아와 분위기를 바꿔서 기분을 전환 합시다” 하고 차내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며 노래자랑이 시작된다.
  이근유 회장이 “박달재”를 부르고, 문화방송 전주 사장을 지낸 김순환 씨가 현인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신라의 달밤”을 구성지 게 부른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논에는 푸른 벼가 자라고, 네모진 논은 커다란 바둑판을 연상케 한다.
  ‘운악산’ 휴게소에서 시원한 바람을 마시고, 광릉 숲을 지날 때 는 “멍석카페”라는 술집 간판이 스쳐지나간다.
  멀리 보이는 산허리엔 저녁연기가 자욱하게 띠를 두르고, 구름 과 산 사이엔 석양 노을이 곱다. 초가집에서 가늘게 피어오르는 저녁연기를 보며, 다시는 동족끼리 싸우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기  를 바란다.

                                               (2003. 7. 1. 고양시 일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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