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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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의 노병의 독백

상이군인

2 9,690 2004.12.1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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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2004. 8. 23) 오전이다.
의사의 진단과 약을 타러 서울 둔촌동 보훈병원을 찾았는 데, 35년 전 월남에서 같이 근무하던 공군의 정인선 소령을 만났다.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왔느냐”라는 상호 물음에 정 소령은 “나는 19 80년에 대령으로 예편하고, 10년 만인 1990년에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당뇨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 데, 당뇨병이 고엽제 후유증이란 것을   알고, 용산에 있는 국가보훈처 서울지청에 신고(2000. 5)하여 지금은   국비환자로 등록되어, 진료비와 약값은 무료요, 매월 생계비의 일부를 보조받고 있으며, 오늘도 의사의 진료와 약을 타러 보훈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국비환자라면 상이군인인 데, 상호는 휴전 직후의 사회상을 회상한다. 상호가 육군중위 때(1957. 11)의 일이다. 연례장교정예신체검사에서 폐가 나쁘다는 판정을 받고, 한겨울에 제대를 위해서 부산 동래에 있는 육군 제31병원으로 후송이 됐다. 제31병원은 일명 정양원이라고도 부르며, 전상(戰傷)으로 집에 돌려보내지 못하는 중증 상이군인을 국가에서 수용 관리하는 곳이며, 한편으론 군인으로 복무하기엔 부적합한 장교가 제대를 앞두고 대기하는 곳이다.

휴전 직후에는 전쟁을 하느라 국고는 바닥나고,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하고 손발이 잘린 부상병은 국가에서 학교 교실에 수용하여 병원 역할을 하며 하루 3끼 식사만 제공하고, 방치된 중증 상이군인은 가족의 부양을 책임지고 살길을 찾아 병원을 뛰쳐나와 거리를 방황했다.

제31병원은 5동의 콘크리트 건물에서 1동은 장교 내무반이오, 2동은 하사관 내무반이며 2동은 병원이다. 저녁을 먹고 난로 가에 둘러 앉아 김(金應洙) 중위가  “백마고지 방어 시(1952. 11)에 소대장으로 중공군과 싸우던 경험을 얘기하는 데, 하사관 내무반에서 민(閔丙浩) 중 사가 놀러왔다.
“동래극장에서 상연하는 ‘셰인’이라는 영화가 재미 있다기에 보러 가는 데, 장교 내무반에서 같이 갈 사람은 없습니까” 하고 동행을 권유한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김(金相基) 중위가 간다고 하기에 상호도 따라나선다.
민 중사가 내무반으로 가더니 목발 2쌍을 가져와서,  “장교 님, 이 목 발을 가지고 가다가 극장 입구에서는 목발에 기대어 발을 끌다가 곧게 뻗으며 극장으로 들어갑니다” 하고 상이군인이 극장에 무료로 입장하 는 요령을 알려준다.

제31병원에 수용된 장교는 제대 명령을 기다리는 장교요, 사병은 전투를 하다가 부상을 당한 중증 상이군인으로 집으로 가지 못할 형편이라 병원에 집단 수용했는 데, 신분은 모두가 현역이라 손이 잘려 의수(갈고리)를 한 군인은 갈고리부대원이라 부르고, 발이 잘려 의족(義足) 을 한 군인은 목발부대원이라 부르며, 손발이 모두 잘린 군인은 달마부대원이라 부른다.
10여 명의 대원이 집합하여 극장 입구까지 가서는, 갈고리부대원이 앞에 서고, 목발부대원이 뒤따르며, 맨 뒤에는 달마부대원이 갈고리부 대원의 등에 업혀 줄지어 안으로 들어가는 데, 입장권을 요구하는 검표 직원에게 갈고리부대원은 뒤따르는 부대원이 요금을 낸다고 갈고리 의 수를 번쩍 들면, 목발부대원은 묵묵히 뒤따르고, 맨 뒤에는 갈고리부대 원이 달마부대원을 업고 당당하게 입장하고, 입장권을 요구하던 검표 직원은 물끄러미 줄 지어 입장하는 관람부대원의 뒷모습만 바라본다.  

돈 있는 부대원은 아침에 상가를 찾아가서, 상인들이 요구하는 금액 을 나눠주고, 늦은 저녁에 찾아가선 아침에 나눠준 원금에 추가해서 1할의 이자를 받는다. 기차를 타고 자리에 앉으면 갈고리부대원이 갈고 리에 신문을 끼어 승객 무릎 위에 올려놓고, 승객은 말없이 신문 값으 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는 데, 이 돈은 사회가 정한 상이군인이 파 는 신문 한 장의 공정가격이다.
그래도 상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이나, 신문판매는 점잖은 행 위요, 절망에 빠진 상이군인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길을 찾는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세금을 걷으러 간다고 갈고리부대원이 달마 부대원을 업고, 부산을 출발해서 서울의 대기업체를 찾아가 사장실 책 상 위에 달마부대원을 내려놓으면, 사장은 말없이 일정액의 지폐다발을 내놓는데, 이것을 가리켜 정부에서 징수하지 못하는 세금을 상이군인이 걷는다고 해서 “애국세”라고 부른다.

50년이 지난 지금은 나라 살림이 넉넉해서 정부에서 용사촌을 지어 상이군인을 수용하고, 상처 부위에 따라 급수를 매겨 국가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질병엔 약을 주며 생계를 지원하여 거부감이 없지만, 휴전 직후에는 정부에서 대책이 없으니 상이군인이 거리를 방황하고, 기업체 집행 예산에는 예비비라고 해서 상이군인에게 지불할 경비가 같이 편성되어서, 상이군인 하면 국가에 기여한 공로보다는 사회에서 외면하는 압력단체원이요, 행패 부리는 공포의 대상으로 사회에 기생하는 필요악의 존재다.

전쟁이 끝난 지 4년 뒤의 일이오, 지금부터 47년 전의 일이다.

정 대령의 말을 듣고 원무 3과 고엽제 담당직원을 찾아가서 상의를 하니, 담당직원은 주치의의 진단서를 가지고 관할 보훈지청에 가서, 고엽제후유증 담당직원을 만나 상의하라고 한다.                              
상호가 35년 전 월남에 파병되어 보직을 받기 전에 야전에 나가 진중 근무를 하며, 미군 폭격기의 폭격과 포탄이 작열하는 소리, 미군의 ‘코 부라’ 헬기에서 뿌리는 고엽제 흰 가루가 높은 산에서 안개가 가라앉듯 밀림 위로 가라앉는 것을 본 기억이 회상된다.

의사의 진단서를 가지고 의정부 보훈지청 고엽제후유증 담당직원을 만나 상의를 하니, “오늘이  2004년 8월 23일이니 2개월 후인 10월에 본인과 보훈병원으로 통보가 가서 신체검사를 거쳐 고엽제후유증 환자로 판정이 나면, 국비환자로 등록하여 병은 국가에서 무료로 치료하고, 발병 정도에 따라 매월 생활비의 일부를 보조 하겠다고 신체검사 결과를 기다리자고 한다.

우리 사회는 옛부터 년령이 60세가 되는 해를, 갑자, 을축, 병인, 정묘 하고 육갑으로 따져 자기가 태어난 태세(太歲)가 돌아오면 환갑이라 하여, 그 자손들은 자기 어른의 장수를 기뻐하며 친지를 불러 장수를 축하하는 잔치를 열었으나, 현대는 의학이 발달하고 의식주가 안정되어 60대는 청년이오, 70대는 장년이고, 80대가 지나야 노인이라고 한다.                                        
건강을 염려해서 아침 일찍 등산을 하고 아파트로 돌아오는 데, 현관 우편함에 편지가 들어있다. 지난 10월 19일(2004) 서울 둔촌동 보훈병원에서 실시했던 신체검사 결과의 통지서다.

편지 봉투 안에는 상호가 ‘국가유공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제4항을 적용받는 “전상군인”에 해당되고, 상이(傷痍)등급  6급 1호로 분류되어 전상(戰傷)에 대한 보답으로 국가에서 병을 치료하고, 매월 생활비의 일부를 보조 하겠다고 12월 31일까지 신분증과 도장, 사진 2매를 가지고 의정부 보훈지청 관리과로 출두하라 는 통지서다.

아침 일찍(2004. 12. 31) 상호가 일산에서 출발하여 의정부 보훈지청에 당도하니 12시 30분이다. 점심시간이라 직원이 없을 줄 알았는 데, 2,3명 남아있는 직원 중에 고엽제후유증 담당 직원도 남아 있다. 고엽제후유증 담당 직원은 상호를 보고 반갑게 마지하며 신분증과 사진, 도장을 요구 하기에 3가지를 주었더니, 그 자리에서 국가유공자 보훈번호 21212034로 등록하고 신분증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국가유공상이자가 누릴 수 있는 보훈혜택을 설명한다. 상호가 월남에서 귀국한 지 34년 만이오, 고엽제후유증으로 발병한 지 17년 만의 일이다.
상호는 74년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군대생활 27년, 공직생활 10년에 출납관(出納官), 예산장교(豫算將校), 검수관(檢受官), 통제관(統制官), 관광외교관(觀光外交官)이란 부직함(副職銜)을 가지고, 구치소와 직결되는 위험한 오솔길을 아슬아슬하게 걷다가, 기억상실증으로 17년의 세월은 잊어버리고, 금년 1월에 의정부 보훈지청에 기지고 있는 질병을 신고하니, 국가보훈처에선 서울 보훈병원의 신체검사를 거쳐 국가유공상이군인으로 판정하고, 신고한 시점에서 살아가는 데 국가에서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전쟁 직후에는 상이군인 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사회가 50년이 지나니, 상이군인을 국비 환자라 부르며 긍정적으로 평가 한다.

꼭 60년 전의 일이다.
상호가 어린 장돌림이란 호칭을 들으며 고향의 여러 장을 떠돌 때, 나도 국가를 위해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는 데, 애국하는 방법 중 하나가 상호 몫으로 돌아온다.

연극 무대에서 주연 배우는 짜여진 각본대로 열심히 공연해야 하는 데, 각본대로 공연하지 않으면 연극이 끝난 시점에서 데엥하고 징을 치며 막이 네리고, 대기실로 들어가면 기다리고 있던 연출자로부터 연극을 불성실하게 했다고 심한 꾸중을 듣는다.
상호도 짜여진 각본대로 인생극장에서 열심히 공연하니 데엥하고 징이 울리고, 무대에서 네려와 대기실로 들어가니 기다리고 있던 연출자는 연극이 성공적으로 공연되었으니 앞으로의 생활은 극단 측에서 책임진다고 하는 데, 주연 배우가 공연할 무대는 사라졌다.


Comments

이영구 2005.02.07 20:44
내 나이 50대 후반 .내고향 진해는 군사도시라 어렸을 적에는 육해공군해병대가 다 있었고 상이군경도 무척 많았습니다 이심전심.눈물이 납니다
박경화 2005.02.19 03:20
이영구 씨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내용이 딱딱해서 내가 글을 올렸어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데, 오랜만에 들려보니 이 선생님이 다녀가셨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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