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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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의 노병의 독백

송구영신

0 10,302 2008.01.0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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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작정 상경한 것이 1946년 2월로, 오늘이 2007년 12월 31일이니 만 60년과 10개월이 흘렀다. 나는 대단한 인물은 못되지만 어렸을 때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났으니, 의식하던 안하던 지나온 발자취를 뒤돌아보게 된다.  
  일본 식민지 시대엔 일본 정부의 우민정치(愚民政治)로 우리 연배는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대부분이 문맹이다.
  내가 기억하는 교육기관은 강원도 춘천이 도청 소재지인데도, 한국인이 다니는 초등학교(春川本町公立國民學校)와 일본인이 다니는 초등학교(春川綠丘公立國民學校)가 있었는데, 일본인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잘 모르지만 한국인이 다니는 초등하교는 전체 학생수가 2천 6백여 명이며, 1개 학급의 정원은 90명 내외다.
  졸업을 앞두고 학급의 반장을 하던 나는 관비 학생으로 등록금이 필요 없는 사범학교 진학을 희망했으나, 아버지가 없는 결손가정이라 학교 훈도(선생)가 되기엔 부적격하다는 판단으로 학교 당국의 입학 추천을 받지 못해 진학을 포기하고, 중학교와 농업학교는 돈이 없어 입학의 길이 막히자 생각다 못한 나는 장래가 보장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군수공장인 인천 히타치 공장으로 떠난다.
공장에서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있는데, 해방이 되며 다시 인생의 앞길을 설계해야 할 기회가 돌아오자, 나는 무작정 상경해서 어렵게 중학교를 마치고, 초등학교 준교사 검정고시를 거쳐 꿈에 그리던 초등학교 선생이 되었으나, 등교 1주일 만에 6•25사변이 발발한다.
  나는 고향으로 피난 가서 정치체제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는데, 서울에서 교원으로 있었다고 해서, 반동분자로 분류되어 제거하기 위해 연행하러 온 인민군 정찰병을 어렵게 따돌리고, 9•28수복 후엔 군에 소집되어 국민방위군으로, 현역사병으로, 장교로 6•25사변과 월남전에 참전한다.
  사병 때는 김화의 저격능선 전투에서 중공군과 대치하며 아군의 진내사격 시엔 엄폐된 교통호로 들어가 포탄을 피하고, 장교로 임관해선 정보장교로 월남에 파병되어 베트콩 소굴을 소탕하고, 대대 규모의 베트콩 야습을 물리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
  국내로 돌아와 합참에서 계속 월남전을 수행하다 야전에 나가 국토를 방위하고, 김일성의 남침 야욕이 증가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방어사단 창설에 참여하다가, 육군의 추천으로 청와대로 들어가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 관광지와 회의장을 시찰하고, 국내로 돌아와선 외국에서 견학한 지식을 살려 열악한 관광산업에 접목하여 한국 관광을 국제수준으로 격상하는데 일조를 한다.
  지금은 관광입국(觀光立國)을 목표한지 30년이 지나니 우리나라가 세계 관광산업의 첨단을 달리지만, 옛날엔 관광지다운 관광지가 없고 국제경기장이나 국제회의장이 전무하던 나라가, 이제는 한국에서 관광을 하며 소진(消盡)된 활력소를 재충전 하고, 국제경기와 국제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지 않으면 성공을 보장 못한다고 행사 조직 관계자가 우려를 한다.
                                            
  일본 식민지로부터 해방되고 60여 년이 자난 지금은 살기가 좋아져서, 문맹이나 콩나물교실, 보릿고개와 춘궁기, 징용과 여자정신대란 단어는 국어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됐다.
  의도적으로 계획한 산행(山行)은 아니지만 일요일(2007.8.26)이라 등산을 결심하고, 서울 북한산 승가사를 찾았더니 등산객이 꼬리를 물고 산으로 올라오는데, 나는 중학교에 다닐 때(1947) 소풍 목적지가 승가사로 결정되어, 담임선생에 이끌려 학생들과 같이 효자동 전차 종점에서 열 지어 승가사를 목표삼아 북한산을 오르던 추억이 회상된다.

  12시가 되니 “댕...,대앵...,대앵...,”하고 산사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며 식당에선 등산객에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나도 등산객 틈에 끼어 식사를 맛있게 먹는데, 옆에 앉은 어린이는 식사를 못하고 젓가락으로 밥을 끼적거리며 자기 아버지에게, “아빠! 피자는 안 주나?”라고 묻는다.
  해방 직후엔 봄이 되면 초근목피(草根木皮)다, 보릿고개다, 춘궁기(春窮期)다 하던 나라가 60년이 지나니 춘궁기란 단어는 사라지고, 외국과의 무역으로 국민소득이 2만 불이라고 하며, 지난 광복절(2007)엔 ㅇㅇ일보 사설(社說)에서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되고, 건국한지 반세기 만에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같은 시기에 나라를 세운 아프리카 53개국의 GDP(국민총생산고)를 모두 합해도 우리 경제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보도한다.

  운동 경기에선 야구와 축구에서, 골프와 정구, 양궁과 사격에서, 수영과 빙상에서, 한국 선수들의 입상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최근엔 빙상의 ‘펴겨’ 여자 선수 “김연하”와 수영의 “박태환” 선수가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고 TV와 신문에서 연일 보도하더니, 오늘(2007.11.15) ㅇㅇ일보 A13면에선 미국 프로리다주 세인트 오거스틴에 있는 세계골프명예의 전당(The Word Golf Fall Of)에 현역 골퍼론 최연소자로 “박세리” 선수가 입성했다고 보도하고, A25면엔 “박태환"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5차 대회 남자 자유형 400m에서 우승했다고 보도하며, 또 다른 ㅇㅇ일보 스포츠란 A26면에선 빙상의 요정 “김연하”가 올 시즌 빙상의 피겨 최우수 선수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고 보도한다.
  TV와 라디오, 신문에선 연일 한국 선수의 우승 소식을 방영하며 알리고 보도하더니, 오늘(2007.12.20) 아침 ㅇㅇ일보 제1면 상단에 “이명박 520만표 차 압승”이란 대문자의 표제와, “17대 대통령 당선...이승만 이후 최대 격차. 한나라당 집권, 10년 만에 우파로 정권 교체, 이 당선자 “겸손한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라는 소문자의 부제로 된 기사가 실려 있다.
  낮 12시, KBS.TV채널 9의 뉴스 시간엔 이명박 당선자가 내•외신 기자 합동회견에서 국정운영 방침을 밝히며, “국민에 대한 담화” 발표가 실렸는데, 요지를 간추리면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가자는 호소다.  

  우리나라가 경제대국(經濟大國)이오, 스포츠 강국이 되고, 사회에선 2만 불 고지를 넘어 3만 불 고지를 향해서 뛸 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다짐하며 국민소득 4만 불 시대를 약속하고, 외국 언론에선 불도저 대통령 후보가 당선됐다는 제목으로, 이명박 후보의 선거운동과정과 그 결과를 상세히 보도한다.

  오늘(2007.12.31) 저녁 KBS채널 9의 송년 특집 뉴-스 시간엔 그동안 보도한 체육 선수 외에, 남자 골퍼의 최경주가 금년 씨-즌 2승을 거뒀다고 추가로  방영한다.  
    새해 들어서도 낭보(朗報)는 계속된다. 아침(2008.01.07)에 배달된 ㅇㅇ일보 1면 상단에 “태극기, 문화재 된다”라는 커다란 제목과, “망국의 아픔도, 건국의 기쁨도 함께 했던...”이라는 작은 글씨의 부제와 함께, 조국 광복 60주년을 맞는 금년 광복절에 각급  기관 박물관에 소장 중인 역사 가치가 높은 33점중에서 후손에게 물려줄 역사성이 있는 태극기를 골라서 국가 문화재로 지정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상징물인 태극기가 1983년(고종 20) 공식 국기로 채택된 이래, 처음으로 국가 문화재가 된다.
  아시아경기대회가 한국에서 열리기 전까지는 태극기는 국가를 대표하는 평범한 국기로 알았는데, 아시아경기대회가 개최된 1986년 이후론 기쁨의 상징으로 변하며 국민의 나라 사랑 정신을 북돋아 준다.
  아시아경기대회에 이어 1988년의 올림픽경기대회,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경기대회로 이어지며 각종 국제경기대회에서, 태극기는 환희의 상징이오, 애국의 상징,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태극기를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선수를 응원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조국이 일본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되자, 국민 모두가 조상의 잘못으로 남의 나라 식민지로 전락하여 국민은 무식하고 조국은 가난한 나라가 되었으나,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뛰어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가슴 속에 맹세하던 소원이, 60여 년이 지나니 한류열풍은 세계로 불어가고, 국민들은 가슴에 품었던 소원은 달성했다고 어깨를 넓히며 가슴 뿌듯하게 자랑으로 생각한다.  

  나라 안팎에선 장밋빛 소식만 들려오는데, 나는 고엽제후유증으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된 몸으로 노년이 되니, 또 고엽제후유증이 초청하지도 안했는데 피부병을 가지고 찾아와서 대문에서 기다린다는 전달에, 고통이 나가 손님을 맞을 뿐, 나는 가족에게조차 고엽제후유증의 심방(尋訪)을 알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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