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일본 오키나와 유학

[33]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일본 오키나와 유학

박경화의 노병의 독백

[33]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일본 오키나와 유학

0 2,159 2003.08.26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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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일본 오키나와 유학

오키나와 유학

2년 동안 중대장 직을 무사히 수행하고 있는 데, 1965년도 도미 선발시험에 합격하니, 군 당국은 합격자의 영어 실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영천 육군 부관학교 군사 영어반 과정으로 입교 명령을 낸다.

중대장이 부대를 떠날 때는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음 중대장 에게 인계하기 위해서, 보급품을 연병장에 진열하고 숫자를 헤아려 보급품의 이상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휴전이 되고 10여 년이 흘렀어도  전투 당시의 망실품이 그대로 장부에 남아있어, 중대에 따라 사병의 복장이 다르고, 중대 망실품은 상급 부대 지휘관도 인정하고 있어, 부대장 인계인수 때마다 말썽이 된다.

암묵리에 망실숫자를 인정하고 있으니, 부대 인계인수는 약간 의 잡음은 있어도 이루어진다.

망실숫자가 있어 인계인수가 어려우면, 그 소식을 들은 장병은 후임자의 이해 부족을 비난한다.

상호 중대 근처에는 보급품의 인계인수가 안돼, 전임 중대장이 후임 중대장을 카아빙총으로 사살하고, 자신도 자결하사고가 발생했는데, 전임 중대장의 미망인은 어린 자식을 데리고, 군 장병의 동정을 받아가며 보험 설계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전임 중대장이 후임 중대장에게 재산을 인계하다 이상이 있으면, 새로운 보직도 받지 못하고 전속 명령은 취소된다.

중대장들은 상급 지휘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전투행위 때 망실한 물자요, 휴전 이 된 지 10여 년이 흘렀으니, 국가적인 차원에서 군수품의 망실 숫 자를 삭제해 주면, 부대를 지휘하는 데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충실한 근무를 할 수 있을 텐데 하고 불평이 대단하다.

상호는 후임 중대장에게 중대 재산을 인계하기 위해서 중대가 가지고 있는 보급품을 연병장에 진열하여, 이상 유무를 확인한다 니까, 각 소대 선임하사가 무리지어 중대 본부로 들어온다.

중대장 책상을 중심으로 일 열로 선 소대 선임하사를 대표해서, 인사계가 재물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상호가 그 이유를 물으니 3소대 선임하사(楊萬基 中士)가, “보급품의 관리는 선임하사 책임 이오, 보급품의 이상 유무를 보고하는 것도 선임하사 책임입니다,

보급품에 이상이 없으니, 재물조사는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한다.

상호는 선임하사들의 결정을 고맙게 생각하며, 영어 교육을 받기 위해, 강원도 홍천에서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육군 부관학교로 떠난다.

교육 도중, 미8군에서 면접시험과 듣기 시험을 거쳐, 일본 ‘오키 나와’에 있는 미 육군 태평양정보학교로 유학길에 오른다.

일행은 11명으로  육사 출신 장교와 통역관으로 일반 장교는 상호 하나뿐 이다.

상호가 제일 고참이라 육군본부에서 한국군을 대표하는 대표 권과 일행의 비위를 다스리는 징계권, 일행을 인솔하는 인솔권을 부여받고  일본 ‘오키나와’로 출발한다.     

김포공항 미군 군용 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을 때다.

대부분이 미군이며 한국군은 상호 일행밖에 업다.

처음 입어보는 정복에 소매엔 둥근 태극기 둘레에 Korea라는 영자 마크를 달고 모두가 상기된 얼굴이다.

30대 후반의 남자 젊은이가 한국군 인솔단장인 상호를 찾아와서 큰 나무상자를 맡기며, 자기 눈님이 ‘오키나와’에서 한국 토산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데, 이 짐을 ‘오키나와’까지 운반해주면, 교육을 받는 동안 한국군의 집단 회식 등 뒷바라지를 할 것이라며, 수송엔 별다른 문제가 없다며 당당한 자세로 운반을 부탁한다.

상호는 젊은이와 안면도 없거니와 내용물을 못 보았으니, 상자의 운반에 자신이 없어 탁송을 거절한다.

미군 군용기에 탑승하는 군인 은 모두가 미군이라, 보기 드문 한국군의 탑승은 공항 관계자와 군용기 승무원의 시선을 끌며 예상 외로 친절하다.

서울에서 프로펠러 비행기로 3시간을 날은 끝에, 한밤중(1968. 10. 18. 02시)에 ‘카네타’ 국제공항에 내리니, 승객 대기실엔 교수부 교관들이 마중을 나와 있다.

일행의 수하물을 대기실로 운반해서 소유주에 돌려주기 전에 일 열로 진열하고, 미군의 마약 탐지견이 “쿵쿵”거리며, 마약의 유무를 탐지하기 위해서 수하물 주위를 돌아다닌다.

진열된 수하물 모두가 가벼운 여행용 가방인 데, 상호가 탁송을 부탁 받던 화물과 같은 수하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상호는 김포 공항에서 부탁하던 화물의 운반을 거절한 것이, 가방만 가져온 동료 장교들을 위해서도, 외견 상 보기가 민망하지 않아 잘 했다고 생각 한다.         

20대 후반의 미국 청년이 동양인 여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한국군 인솔단장을 찾는다.

상호가 “내가 인솔단장이오”라고 하니, 미국인 청년은 “나는 학교 교관 ‘파워’ 중위입니다.

한국 의정부에 그무 할 때 한국 여자와 결혼을 하고 ‘오키나와’로 전출하자, 처갓집도 ‘오키 나와’로 이사 와서 ‘나하’ 시내에서 한국의 토산품 가게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탁송하는 물건이 없었습니까”하고 묻는다.

상호는 “부탁은 받았지만 내용물을 몰라서 가져 오 지 않았다”라고 답변하니, ‘파워’ 중위 부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간다.   

승용차 세 대에 분승하여 학교로 가는 데, 도로상에 설치된 신호등 이 파란 불에서 빨간 불로 바뀌니, 인적이 없는 깊은 밤중이라 그대 로 통과해도 이렇다 할 제재를 받을 형편은 아닌 데, 운전대를 잡은 미군 교관은 앉은 채 핸들을 잡고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기를 기다 린다.

김포 국제공항에서 탁송 화물의 운반을 거절한 것이 마음에 걸려, 동승한 미군 대위에게 이야기 하였더니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새벽에 ‘후텐마’에 있는 미군기지 안의 육군태평양정보학교 숙소 에 도착하니, 숙소 안은 각 나라에서 도착한 장교들로 북적대고  있 다.

장교 유학생은 한국군 장교 외에도, 월남군 장교, 태국군 장 교, 대만군 장교, 필리핀군 장교, 이란군 장교, 싱가폴군 장교, 인도 네시아군 장교들이며, 미군 정보학교 설치 목적은 군사교육 외에도 아시아 지역에 있는 장교들을 모아 미국 문화에 접촉토록 하고, 국가 간의 친선 도모가 부차적인 목표라고 한다.

교관들은 육사 출신 장교와 ROTC출신 장교, 정년으로 퇴직한 영관 장교가 연금을 타기 위해 하사관으로 복무하는 장교, 미국 본토의 남북 지역 출신 장교, 흑인과 백인 장교에 일본인 2세 장교와 나이 많고 노련한 군무원이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김포 국제공항에서 탁송하던 화물을 거절한 것이 마음에 걸려, 거절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파워’ 중위를 찾았으나, 교관은 대위 이상으로 중위 교관은 없다.

미국은 인권이 보장되고 자유가 발달한 나라지만, 흑백의 인종차별과 남북 지역의 갈등이 심하다.

교관들은 모두 백인인 데 교수부장이 흑인이다. 일과시간엔 “이에스써...,이에스써”하며 교수부장의 명령과 지시 에 말없이 복종하다가도, 일과만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백인은 흑인을 경멸하고, 흑인도 백인의 홀대(忽待)를 당연시 한다.

부라운(Brawn) 대위와 존슨(Jonson) 대위는 같은 교수부 소속 교관으로 평소엔 다정한 친구로 보여, 사생활에도 친하게 지내는 줄 알았는데, ‘부라운” ‘ 대위는 ’존슨‘ 대위가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 은 남부 출신 장교라 보수전인 생각에 권위 의식이 강하다”라고 비 난하는가하면,’ ‘존슨’ 대위는 부라운‘ 대위가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은 북부 출신 장교라, 생각은 참신한 데 행동은 무식하다“라고 경멸한다.

교관을 도와 교재를 돌리던 흑인 조교들이, 일과가 끝나면 5,6명 이 교실 앞 잔디밭 앞에 모여앉아 오른손을 높이 들고 무언의 시위를 한다.

오른손을 높이 드는 것은 흑인이 백인에게 인종 차별을 하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라고 한다.

교관 중엔 ‘핏셔(Fisher)’ 소령, ‘파워(Power)’ 대위, ‘스미스 (Smith)’ 대위, ‘앎 스트롱(Arm strong)’ 대위 등이 있는 데, ‘핏셔’ 소령은 자기 조상이 어부로 지금도 가업을 이어받은 동생이 ‘하와이’에서 커다란 어장을 가지고 있으며, ‘파워’ 대위는 자기 조상이 동네에서 힘이 제일 세었다고 자랑이 대단하고, ‘스미스’ 대위는 자기 조상이 대장쟁이로 동네 농기구는 자기 조상의 손을 거쳤다고 자랑하며, ‘앎 스트롱’ 대위는 자기 조상이 동내에서 팔 씨름을 제일 잘했다고 자랑한다.

한국에선 나라에서 벼슬이 제일 높았다던가, 전국에서 돈이 제일 많았었다고, 보지도 못한 조상을 전국 규모로 자랑을 하는 데, 미국 사람은 마을 단위로 소박하게 자랑한다.

‘오키나와’는 옛날엔 ‘유구(琉球)’ 왕국으로, 지금도 옛 왕국이나 성채의 사적지가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어 찬란했던 옛날의 문화를 자랑한다.

시민 중엔 한국인의 후예가 많은 데, 중국을 왕래하던 고려의 상인이 태풍을 만난 배가 유구로 떠내려가서, 그곳에 정착한 고려 사람의 후손이다. 태풍을 만나 유구까지 표류한 고려 상인이 고향이 그리워, 성씨의 두 자리 글자 중 끝 자에는 반드시 고을려(0麗)자를 넣어서 고려 인 이라는 것을 나타냈는데, 일본의 심수관(沈壽官)씨 일가가 한국인의 후예라는 것을 굳이 밝히는 것은, 상업적인 목표도 있지만 ‘오키나 와’ 사람이 성씨의 끝자리에 ‘고을려’자를 넣는 심정과 일맥상통하는 행위다.

미 육군 태평양정보학교에 유학 온 장교들은 교육에 앞서 강당에 모여 ‘오키나와’의 역사를 듣는 데, 역사를 소개하는 현지 여인은 1945년 7월 ‘오키나와’ 섬에 상륙한 미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우며 죽을 줄 알면서도 계속 공격을 하여 일본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했다 고 눈물로 설명하며, 섬을 지키던 일본군과 공격을 하던 미군을 다같 이 칭찬한다.

설명을 듣던 상호는 미국은, 옛날 일본의 적국이었는데, 현지인이 미군을 칭찬하는 것이 ‘씨나리오’에 의한 미군의 칭찬인 지, 가슴에 서 울어나는 칭찬인 지 알쏭달쏭하다.

오후에 사적지(史蹟地)를 찾아 섬을 일주하여 동쪽 끝 해양공원 (海洋公園)에 들렸을 때다. 태평양 전쟁 때, 섬을 지키던 일본군은 ‘오키나와’ 섬에 상륙한 미군과 맞서 싸우며 전세(戰勢)가 불리하자, 동쪽 끝까지 밀리면서 해발 10m인 동 지역에서, 물결이 출렁대는 남태평양 바다에 뛰어들어 옥쇄(전멸)했다고 하며, 미군은 이 해양 공원을 가리켜 “자살의 절벽”이라고 부른다. 해양 공원 안엔 각 지역 출신 전사자의 위령탑이 세워져 있는 데, 일본 군인으로 참전한 한국인 위령탑도 있다.

나카노켄(長野縣) 위령탑 앞엔 태평양전쟁 때 전사한 군인의 유복 자가 성년이 되어 국가 고무원이 됐다고 발령장(發令狀)과 함께 아 버지에 바치는 편지를 써서 영전에 바치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돌로 눌러 놓은 것도 보이는 데, 상호는 그 광경을 보고 전쟁터에서 전사한 자신의 묘지 앞에, 아들인 성훈이가 가슴에 맺힌 못 다한 응어리를 푸는 편지라고 생각되어 콧날이 시큰해진다. ‘오키나와’는 미군정이 실시되는 점령 지역이라, 행정은 미국의 법률이 적용되고, 화폐도 미국의 ‘달러’가 유통되며, 각국의 장교 학생들은 미 육군 정보학교에 유학 온 연합국의 장교들이라, 행동은 치외법권을 인정하며, 특별한 배려와 대우를 한다.

내일이면 졸업식을 하고 각자 본국으로 돌아가는 저녁이다.

모두들 본국으로 가기 위해 귀국 준비에 바쁜 데, 피립핀 장교의 인솔단장인 ‘데라쿠르스(Dellacurus) 해군 대위는 본국으로 반입 한다고 찌프 한 대를 사온다.

상호는 한국군 인솔 단장으로 평소 각종 행사와 연락 업무에 한국군을 대표해서, 각국 장교 인솔단장 과 는 접촉이 잦았으며, ‘오키나와’는 면세 지역이라 물가가 본국보다 3분의 1은 싸고, 군인이 반입하는 물품은 모두 면세라고 한다.

상호가 4개월의 군사 교육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미군의 정보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경북 영천에 있는 육군 정보학교로 명령을 낸다.

교관으로 보직을 받고 정보판단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1968년 4월 1일부로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이 된다.

상호는 소령으로 진급해서 계속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데, 군  당국은 4개 학교를 1개 학교로 통합할 필요성이 생겨, 4개 학교를 군의 부지가 있는 서울로 이전하고, 그 자리는 제3사관학교를 창설 한다고 한다.

타 부대로 전출을 희망하는 장교가 전속을 가니 상호가 교장 다음으로 서열이 높다.

부대를 인수한다고 참모를 대동하고 별 둘을 단 정(鄭鳳玉) 소장 이 온다. 정 소장은 한신 장군과 같이 군에선 꽤 알려진 장군이다.

들리는 말로는 그가 대령 계급장을 달고 제2군사령부의 작전참모를 할 때, 같은 계급의 헌병참모가 일요일 아침, 까만 찌프에 여자를 태우고 질주하다가 앞에 가는 작전참모 찌프를 추월하자, 정 소장은 다시 헌병참모의 찌프를 추월하여 질주하는 데, 헙병참모 찌프가 다시 추월을 시도하니, 급정거를 하여 헌병참모가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사변 전에 포병 1개 대대를 대동하고 월남한 정 소장은, 인민군 출신이라고 해서, 대령에서 장군으로 진급이 안 되는 데, 장군 진급 예정자를 선정해서 박(박정희) 대통령의 결재를 맡으려 간 인사참모 에게, 정 대령의 선정 여부를 묻자 “정봉욱 대령은 찬성표 하나가 모 자라 선정에서 제외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박 대통령은 “그러 면 내가 한 표를 주지”라고 해서 장군으로 진급이 됐다고 한다.

그가 제0사단의 사단장으로 있을 때다. 북쪽 DMZ를 넘어 한국 지역으로 오는 공작원을 살해하기 위해서, 북쪽에서 쏘는 포탄이 한국군 DMZ 안으로 쏟아지자, 사단장은 북쪽 DMZ 내로 발사하는 것은 대통령의 전결 사항인 데, 사단장 독자적인 판단으로 북쪽 DMZ 안에 대고 포탄을 비 오듯이 발사하고, 대통령에겐 사후 보고 를 했으며, 사단 근처에 살던 주민이 전쟁이 난 줄 알고 피난 준비를 했다는 일화가 있다. 

1968년 12월 하순이다.

부대 이동을 책임지고 소속 장병과 집기 를 서울 용산에 있는 육군 정훈학교로 이동시키고, 상계동에서 출,퇴 근을 하며 거여동에 부지를 잡은 육군 종합행정학교 창설업무 에 참여 한다.

소령 계급장을 달고 정보판단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데, 월남전 에 참전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장교는 35세가 월남전 참전의 상한선인 데, 39세인 상호에게 '주월사 특수요원'이란 꼬리표를 달아서 월남전에 참전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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